난중일기에 기록된 명량해전 실제 내용
Published at : 18 Dec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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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직접 기록한
난중일기 명량해전의 기록을
현대어로 번역했습니다
(길이상 약간의 축약이 있습니다)
정유년 9월 16일
적선 330여 척이 우리 배를 둘러쌌다.
우수사 김억추는 멀리 물러나 있었고,
나는 앞으로 돌진하면서 각종 화포를 쏘아댔다.
왜적은 감당하지 못하고 잠시 가까이 왔다가 물러났다.
그러나 형세가 위태로웠다.
“적선이 천 척이라도 우리 배를 당할 수 없다.
결코 마음을 흔들리지 말고 힘껏 적을 쏘라.”
그런데 보니 여러 장수의 배들은
멀리 물러나 구경만 하고 있었다.
신호 깃발을 세워 명령을 내리자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도착하였다.
내가 배 위에서 직접 안위를 불러 호통치니,
안위가 급히 적선 속으로 돌진하였다.
또 김응함을 당장 참하려 하였으나
형세가 급박하여 일단 공을 세우게 하고 돌진시켰다.
왜장이 부하 3척을 몰아 안위의 배에 달라붙게 하였다.
안위와 병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거의 지쳐갔다.
내가 곧 배를 돌려 들어가 빗발치듯 쏘아대니,
적선 3척을 모조리 격파하였다.
투항한 왜인 ‘준사’가 내 배 위에 있었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며,
“무늬 있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자가 아골진의 적장 마다시다.” 하였다.
이에 곧 마다시를 토막 내어 죽이니, 적의 사기가 크게 꺾였다.
여러 배가 일제히 북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가 화포를 쏘고,
화살을 비 오듯 쏘니, 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다.
적선 30척을 깨뜨리니, 왜선은 모두 달아나 감히 우리 수군에 가까이하지 못하였다.
이는 참으로 하늘이 도운 행운이었다. 물살이 극히 험하고 형세도 외롭고 위태로웠다.
진지를 당사도(唐笥島)로 옮겼다.